인간의 삶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다. 어느때는 날카로운 송곳처럼 자신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자존감의 하락을 가져오곤 하는데, 아주 작은 자극으로도 상당히 예민해질 수 있나보다. 사춘기를 이미 훌쩍 지나간 나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마치 사춘기 소년의 종잡을 수 없는 감정처럼 휘몰아칠 때가 종종 있다.
스스로 나아가야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기에 고민이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마치 누군가의 조종을 받는 것 처럼 이리저리 휩쓸리기도 한다. 가장 최선의 정답지를 선택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 또다른 선택지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으리라.
사춘기의 전형적인 형태는 본질에 대한 탐구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난다. '나는 누구인가', 어찌보면 지극히 철학적인 이야기란 생각이 들지만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답이 없는 문제에 몰입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몰입은 부정적인 것에 가까울 것이다.
물론, '철학'이라는 범주에서 사고의 무한한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이 될 수 있지만, 사춘기때의 그것은 다소 차이를 보인다. 나이가 들어 찾아오는 사춘기, 아니 오춘기는 아마도 삶에 대한 지쳐버린 자신의 모습에서 비롯될지도 모른다. 낮아진 자존감은 예민하고 날카로운 송곳으로 다가와 의도치않은 상처로 남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부정적인 사고는 중독성이 강하고, 그 중독성은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을 만들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감은 다시금 부정적인 생각을 동반할 수도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변화'일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지속적인 변화를 모색하지만, 사실은 하나의 획일적인 삶을 찾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모험을 떠난 탐험가의 종착지는 자신이 떠난 자리인 것 처럼,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의 끝은 결국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에 종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선택이 최고였는지는 시간이 지난후에 알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반복되는 최선의 삶을 살아가지만 그 과정에서는 느끼지 못한다.
훗날 다시금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가운데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현재의 삶에 지쳐있다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변화는 생활의 패턴, 소비의 형태, 휴식등 일상적이지 않았던 모든 것에서 찾을 수 있는 부분이다.
변화는 '자극'으로 다가와 또 하루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은 변화가 아닌 자의로 이루어진 의도한 변화여야만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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